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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누구나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일은 그 불편한 순간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주하는 일입니다. 언어는 자주 길을 잃고, 기억은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립니다. 돌보는 사람은 그 앞에서 애써 다리를 놓아보려 하지만, 다리는 늘 삐걱이며 흔들립니다. 그럼에도 돌봄은 멈추지 않고 이어집니다.

 

저 역시 처음엔 늘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반복되는 질문 앞에서 “왜 자꾸 잊으실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고, 같은 대답을 반복하면서도 점점 지쳐갔습니다. 내 안의 작은 목소리가 속삭였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인내심이 없는 걸까. 돌봄을 감당하기에 나는 너무 작은 사람이 아닐까.” 치매를 앓는 분과 마주한 시간은 어르신의 시험이 아니라, 오히려 제 마음을 시험대에 올려놓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어르신은 하루에도 스무 번 넘게 같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냐?” 저는 처음엔 기계처럼 대답하다가 문득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르신, 오늘은 그냥 좋은 날이에요.” 그분은 제 얼굴을 바라보다가 한참 웃으셨습니다. 그 웃음은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정확한 요일보다, 함께 웃는 그 순간이 그분을 지탱했던 것이지요. 저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치매 돌봄에서 중요한 것은 기억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것을.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사람은 이해받는 순간 비로소 변화한다”고 했습니다. 돌봄 속 대화도 교정이 아니라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치매 어르신의 말은 때때로 어제와 오늘이 뒤섞이고, 사실과 상상이 얽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중요한 어떤 감정이 살아 있습니다. 반복된 말은 지루한 메아리가 아니라, 어르신 내면에서 다시 불러내야만 하는 기억의 파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귀찮아하는 그 반복 속에서 그분의 존재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혹시 어르신이 반복해서 묻는 건, 단순히 ‘알고 싶다’가 아니라 ‘나와 대화해 달라’는 무언의 요청이 아닐까. “오늘이 무슨 요일이냐”는 질문은 사실상 “나와 지금을 함께해 줄래요?”라는 속삭임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답을 정확히 주기보다, 그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는 대답을 건네야 하지 않을까요.

 

이해는 말로만 완성되지 않습니다. 눈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잡아주는 것. 이런 비언어적 소통이야말로 돌봄 현장에서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연구에서도 치매 환자들은 언어 기억은 약해져도 정서적 반응에는 오래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손을 꼭 잡으며 속으로 속삭였습니다. “나는 당신 곁에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그 진심은 전해졌습니다.

 

식사 자리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밥숟가락을 들고 한참 멈춰 계시던 어르신이 있었습니다. 저는 조급해져서 “드셔야 해요”라고 재촉하려다, 그 순간 그냥 제 숟가락을 내려놓고 어르신을 바라봤습니다. 그러자 어르신이 제 눈을 보며 “나는 배고프지 않아. 대신 네가 곁에 있어 고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그날 저는 배가 부른 것보다 ‘곁에 있어 준다’는 사실이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이부분의사례는 몇번을 반복하여 소개해도 과하다는생각이 안듬니다}

 

여기서 떠오르는 말씀이 있습니다. 공자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효는 단지 부모를 먹이고 입히는 데 있지 않다. 공경의 마음이 없다면 짐승을 기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치매 어르신을 돌본다는 것은 단순히 간병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분을 한 인간으로 공경하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결국 돌봄의 언어도 공경의 마음 위에서만 살아 움직입니다.

 

돌봄은 결국 나를 비우는 일입니다. 내 방식이 옳다는 집착, 정답을 줘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어르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대화는 달라집니다. 그제야 싸움 같던 시간이 동행의 시간으로 바뀝니다. 그때의 저는 더 이상 간병인이 아니라,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였습니다.

 

프랑스 시인 아라공은 말했습니다.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치매 어르신과의 의사소통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려 애쓰는 그 순간, 대화는 언어의 틀을 넘어 마음의 교감으로 이어집니다.

 

돌봄 속 의사소통은 결국 인간에 대한 믿음을 시험합니다. 기억이 사라져도 감정은 남고, 언어가 흩어져도 마음은 이어진다는 믿음 말입니다. 저는 여전히 부족하고 자주 흔들리지만, 적어도 이 한 가지는 확실히 배웠습니다. "대화의 목적은 옳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저는 때로 지치고 화도 납니다. 같은 질문이 반복되면 속으로 “제발 그만 물으세요”라고 외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돌봄은 완벽한 인내가 아니라, 불완전한 나를 끌어안고 다시 어르신 앞에 서는 용기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삶의 의미를 이야기한 빅터 프랭클의 말이 떠오릅니다. “삶의 의미는 상황에 달린 것이 아니라, 태도에 달려 있다.” 치매 돌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억이 사라져 가는 상황은 바꿀 수 없지만, 내가 그 앞에 어떤 태도로 서느냐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선택이 곧 나와 어르신을 함께 지탱하는 힘이 됩니다.

 

오늘도 어르신의 질문이 이어질 때 저는 천천히 웃으며 대답합니다. “오늘은 좋은 날이에요.” 그 대답 속에는 위로가 있고, 위로 속에는 서로의 삶을 이어주는 다리가 있습니다. 그 다리를 함께 건너는 한, 돌봄은 지치지 않고 계속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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